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(문단 편집) === [[조지 플로이드]]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조지플로이드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[[조지 플로이드|{{{#fff 조지 플로이드}}}]]의 생전 모습.''' || '''이 사건의 피해자.''' 풀네임은 조지 페리 플로이드 주니어(George Perry Floyd Jr.)이며, [[1973년]] [[10월 14일]]에 [[미국]] [[노스캐롤라이나 주]] 페이엇빌에서 태어난 [[아프리카계 미국인]]이었다. 부모가 이혼하자 2세 때 어머니를 따라 [[텍사스 주]] [[휴스턴]]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. 키가 6피트 6인치(198cm)로 굉장히 컸다. 부검 결과 보고서([[http://hennepin.us/-/media/hennepinus/residents/public-safety/documents/Autopsy_2020-3700_Floyd.pdf|#]])에 따르면 사망 당시 신장은 6피트 4인치(193cm), 체중은 223파운드(101kg)였다. 큰 덩치를 타고나 학창 시절 운동선수로, 졸업 후에는 힙합 그룹 '스크루드 업 클릭(Screwed Up Click)' 소속 래퍼(본인 래퍼명은 Big Floyd)로 활동한 적이 있다. 이 그룹은 [[Lil' Flip]]이 한 때 들어가 있었던,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던 그룹이다. 또한 과거 [[포르노]] 배우로 활동한 전적이 있다. [[https://www.dogdrip.net/dogdrip/262716190|#]] 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중 두 딸은 휴스턴에 거주 중이다. [[미네소타 주]] [[미니애폴리스]]에서 5년 간 식당 경비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으나 사망 당시에는 [[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-19|코로나-19]]의 여파로 식당이 폐업해 실직 상태에 있었다.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수 차례의 범죄 혐의로 구속된 전과가 있었는데, 미네소타 주 경찰 노조장 밥 크롤 경위에 의해 확인된 법정 문서([[http://dailymail.co.uk/news/article-8366533/George-Floyd-moved-Minneapolis-start-new-life-released-prison-Texas.html|#]])에 따르면, 조지 플로이드의 전과는 다음과 같다. * [[1997년]] [[8월 3일]] [[마약]] 소지 혐의로 구속. * [[1998년]] [[8월]] 훔친 [[총]]을 이용한 [[강도죄|무장 강도]] 혐의로 구속. * [[2001년]] [[8월 29일]] 경찰 체포에 불응하고 도주한 혐의로 구속. * [[2002년]] [[4월]] 무단 [[주거침입]]으로 체포되어 징역 30일 선고. * 2002년 [[10월]] 또다시 무단 주거침입으로 체포되어 징역 8개월 선고. * 2002년 [[10월 29일]] [[마약]] 소지 혐의로 구속. * [[2003년]] [[1월 3일]] 무단 [[주거침입]] 혐의로 구속. * [[2004년]] [[2월]] [[코카인]] 소지 및 거래 혐의로 징역 10개월 선고. * [[2005년]] [[12월]] 무단 [[주거침입]]으로 체포되었다가 [[코카인]] 1g 이하를 소지한 혐의와 함께 징역 10개월 선고. * [[2007년]] [[11월 27일]] 무장 강도 혐의로 기소. * [[2009년]] 한 [[흑인]] 여성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그녀를 총으로 위협하고 폭행한 뒤 돈과 마약을 털어 간 혐의로 체포되고 징역 5년 선고. 2009년부터 5년간 복역한 후 [[2014년]]에 출소해, 미네소타 주 세인트루이스 파크로 친구와 함께 새 삶을 찾아 이주했다. 석방된 이후 플로이드는 기독교 교회에 들어가 청년들을 멘토링하고 SNS에 반폭력 동영상을 게시했으며, 또한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자선단체에 가입하는 등 여러 선행들을 행하였다.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독실한 [[개신교]] 신자로, 봉사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뒤늦게나마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젊은 흑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([[http://christianitytoday.com/news/2020/may/george-floyd-ministry-houston-third-ward-church.html|#]]).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전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, 과거 엄연히 수 차례의 범죄 경력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이므로 그를 순교자로 미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. 사건 이후 미니애폴리스 경찰 노조에서는 그는 체포될 때 20달러 짜리 위조지폐를 이용하려 한 범죄자일 뿐이라며 반발하기도 했지만, 사망 당일의 위조지폐 건은 인상 착의가 비슷하다는 정황으로 체포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. 부검 결과 '''[[마약|마약성]] [[진통제]]'''인 '''[[펜타닐]][* 이 마약의 위력은 그 위험하다는 [[헤로인]]의 무려 '''50~100배'''에 달하며 치사량은 '''0.002g'''이다. 과용 시 신경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고 인체의 호흡 기능이 중단되어 질식해 사망하게 만드는, 그야말로 독극물과 맞먹는 위험성을 지닌 치명적인 마약이다.]'''과 중추신경 흥분제인 '''[[메스암페타민]]([[필로폰]])''' 등의 성분이 검출되어, 조지 플로이드가 사건 당시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졌다. 즉 출소 후인 당시에도 체포되지 못했을 뿐 엄연히 범죄 사실이 있는 셈이라 도덕적인 부분에서 논란이 생겨났다. 다만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한 근거는 마약 사용이 아닌 '음주와 위조지폐 사용으로 [[유죄추정의 원칙]]',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차 안에서 체포에 저항하였으니 무저항은 아니지만,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것이다. 또한 코로나-19 바이러스 [[PCR]]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. 다만 보고서는 별도로 붙인 코멘트를 통해 "고인은 지난 [[4월 3일]] 코로나-19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알려졌다. 코로나-19 PCR 양성 반응은 의료상 질병 해결 이후에도 수 주 동안 계속될 수 있다"라고 설명했다. 부검 결과 플로이드가 무증상 감염자로 추정되며 선행 감염으로 인한 PCR 양성 반응이 유지됐을 수 있다는 것이 부검 소견이다. 이 외에도 조지 플로이드는 평소 [[심장]][[동맥경화증]]과 심장비대증, [[고혈압]] 같은 지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([[http://news.v.daum.net/v/20200604121035015|#1]] [[http://news.v.daum.net/v/20200604140055670|#2]]). [[2020년]]으로부터 38년 전인 [[1982년]], 조지 플로이드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과제로 미래에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주고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쓴 에세이와 그림을 당시 그의 담임 선생님이 공개하였다([[http://youtu.be/tmMosjRS6tw|#]]). 에세이에서 그는 [[대법관|대법관(Supreme Court Judge)]]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. 여담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이 [[미국 민주당|민주당]] 전당대회에서 [[조 바이든]] 지지 연설을 하기도 했다([[http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1/0011822147|#]]). 그가 사망한 뒤 1년이 지난 [[2021년]] [[3월]]에 조지 플로이드의 유족이 시 당국으로부터 한화 약 300억 원을 배상금으로 받기로 했다(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1/0012257399?sid=104|#]])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